부소산성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쌍북리)
사적 제 5호
▲ 부소산성(낙화암, 고란사 포함)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 신라 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축성의 구체적 방법을 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성내 벽쪽에 호(壕)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성벽의 축조에 판축의 재료로 이용하였다. 바깥 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성벽의 안쪽과 중간에도 기둥을 세워 분할 축조되었다. 기단에는 낮게 석축을 하거나, 기단 석렬을 마련하고, 안쪽으로 배수로 겸 통행이 가능한 좁은 부석(敷石)의 시설도 있다. 성벽에는 가로 세로로 목재를 넣은 것도 있다. 후대의 것은 무너진 흙을 내벽에 보축(補築)하기도 하였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基盤土)를 마치 판축(版築)하듯이 황색 사질토와 적색점질토를 겹겹이 다져 놓았다.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이런 방식으로 축조된 산성의 입지는 경사면이어서 원래의 경사도보다도 더욱 가파른 경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 산성의 아래 너비는 7m 가량이며 높이는 대략 4~5m에 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이 백제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수축, 개축을 거치며 사용된 것이긴 하나, 년차적인 조사에 의하여 성벽과 치성 및 특수한 시설과 내부의 여러 가지 양상이 차례로 밝혀져, 우리나라 고대 축성 기술의 박람회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의 사비루 부근의 산봉우리,를 중심하여 조사된 구간에서는 다양한 집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성에는 동,서남문지가 있으며, 북쪽의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북문(北門)과 수구(水口)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 <삼충사> 부여가 망할 때 열심히 나라를 지켜준 충신 성충과 흥수 그리고 계백의 혼을 기리기 위한 사당입니다 |
▲ <영일루> 1984년 12월 29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때 축조된 부여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사적 5)의 동대(東臺)에 유존하던 건물지에 홍산문루(鴻山門樓)를 옮겨와 세웠다. 누각을 옮겨 세우기 위해 땅을 고르게 다듬는 공사를 할 때 백제의 와편이 많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 누각은 백마강 기슭에 있는 부소산(106m)의 동쪽 산봉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공주 계룡산(鷄龍山)의 연천봉(連天峯:739m)이 아득히 바라다 보인다. 원래 이곳에는 영일대(迎日臺)가 있었는데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1964년 5월 홍산에 있던 조선시대의 관아문(官衙門)을 옮겨와 세운 것으로 이름을 영일루라고 하였다. |
▲ <군창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때 군수물자를 비축했던 곳으로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사적 5) 동쪽 정상부에 있다. 이곳은 영월대(迎月臺)라 하여 넓고 평평한 광장인데, 1915년 이곳 지하에서 쌀·보리·콩 등의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시대 군량미를 비축해 두었던 창고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1981년과 1982년 두 차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함으로써 건물터의 규모가 상세히 밝혀졌다. 건물의 배치는 ㅁ자 모양으로 가운데 공간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배치하였는데 길이 약 70m, 넓이 약 7m, 땅속 깊이 약 47cm 정도이다. 지금도 이 일대를 파보면 불에 탄 곡식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사비성 함락과 함께 멸망할 때의 비극적 역사를 말해준다. 군창이 있던 곳은 지금도 더러 발굴되고 있는데, 이 군창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다 |
▲ <사자루> 부여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 으로, 이곳은 달구경을 했다는 송월대가 있던 자리이다. 조선 순조 24년(1824)에 군수 심노승이 세운 것으로, 조선시대 임천의 관아 정문이었던 배산루를 1919년에 이곳으로 옮겨 짓고는 사비루라 이름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며, 오른편 북쪽 칸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이다. 건물 앞면에는 조선 후기 의친왕 이강이 쓴 ‘사비루’라는 현판 이 걸려 있고, 백마강 쪽으로는 ‘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사비루는 사방이 트여있는 높은 곳에 있어 부여의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누각이다. 건물을 옮겨 세우기 위해 땅을 고를 때 ‘정지원’이라는 이름을 새긴 백제시대 금동 석가여래 입상이 발견되어 더욱 주목받는 장소이다. 2002년 1월 3일 사비루라는 현판은 일제의 강권하에서 굴욕적으로 표기된 사항이어서 문화재명칭을 사자루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
▲ <낙화암> 부여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진 곳이라 한다. 『삼국유사』, 『백제고기』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다고 하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
▲ <백화정> 낙화암 꼭대기에 세워진 이 육각형의 백화정은 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세운 정자이다. |
이제 고란사로 내려갑니다
▲ <고란사> 고란사 절 뒤 바위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고, 그 위쪽 바위틈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고 해서 그 식물 이름을 본따서 절 이름이 붙여졌다 [고란약수와 고란초의 전설] : 백제 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 사뒤편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 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마침 고란 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 라 불렀다. 약수를 떠오는 사람들이 고란초의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 옴으로써 그것이 고란 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백제 임금님은 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걸리고 사셨다 한다. 또한 고란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 진다는 전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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