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 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무왕·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
• 시대: 근대(1929)
• 용도: 기타건축-정자
• 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白馬江)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백화정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부여군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 북쪽 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육각형으로 지은 정자이다. 백화정은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당시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세운 것이다. 바닥을 지반에서 높이 띄우고 남쪽에 나무 계단 하나를 두어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해 두었으며 천장에는 여러 가지 연화무늬를 그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