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테마박물관으로 우진 백제시대 무령왕릉 출토품은 무령왕릉실, 충남지역 고대 ~ 통일신라의 역사문화는 고대문화실에서 전시되어 있으며, 수촌리고분군의 유물도 있다. 야외박물관에는 공주일원에서 출토된 석저와 서혈사지의 석불좌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체험 프로그램
우리가족 박물관 나들이, 박물관탐방, 환두대도 만들기, 어린이 박물관, 사마왕 둘레길 탐방, 우리문화체험실 상설체험 (백제문양과 탁본, 무령왕릉 벽돌쌓기 등)
체험시간
- - 우리문화 체험실 10:00 ~ 17:00, 월요일 휴관
- - 4 ~ 10월(토) 21:00 연장개관
입장료 무료입장
백제 웅진시대를 한눈에 국립공주박물관
백제는 한성, 웅진, 사비 등으로 시대를 구분 할 수 있다. BC18년 온조왕이 나라를 세운 이후 AD660년 31대 의자왕까지 700년 역사를 써내려간 백제는 475년부터 538년 까지 64년 간 웅진시대를 이어갔다. 64년 동안의 짧은 도읍기지만, 한성시대 이후 끊어졌던 중국과의 교역을 재개하고, 신라나 가야 일본 등 주변 나라의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시기이도 하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밀려 왕을 잃은 위기의 백제가 웅진시대를 열면서 중흥의 발판을 마련한 64년의 역사. 국립공주박물관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국립공주박물관 1층에 마련된 무령왕릉실에 전시되고 있는 무령왕릉의 출토유물은 가히 세기의 대발견이라 할 만큼 역사, 고고학, 미술사, 문화재적 가치가 지대한 것으로 백제사가 안고 있었던 의문점을 푸는 열쇠가 된다. 출토유물 중 지석의 내용과 삼국사기의 내용이 일치하여 삼국사기의 신빙성을 한층 높이는 등, 백제 역사 전반과 64년간 백제 웅진도읍기를 밝히는 타임캡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 더불어 충남지역에서 발견되고 출토된 유적과 유물들은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충남고대문화실에 전시되고대왕국 백제의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있다.
1971년 7월 5일 송산리 제5, 6호 고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배수로 공사중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 출토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는 무령왕릉실 입구. 사진만 보아도 당시의 놀라웠던 순간이 느껴진다.
왕릉실의 중심에 출토당시 연도를 재현하고 왕과 왕비의 목관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진묘수와 지석이 발굴당시의 모습대로 전시되어 있는데, 지석 위에 올려 진 엽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오수전』이라는 중국의 철전인데, 무덤이 위치한 땅을 토지신으로 부터 구입한다는 의미로 놓여 진 것으로 한나라의 왕과 왕비도 자신들이 묻힐 땅을 지신에게 사서 그곳에 영원히 잠들었다는 신선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엇인가 얻으려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령왕릉실에 복원 전시되고 있는 왕과 왕비의 목관. 왕릉 입구의 진묘수가 지키고 있는 실체는 바로 영원히 잠든 왕과 왕비다. 진묘수 뒤로 놓여있는 두 개의 관은 일본과의 교역이 활발했음을 나타내 주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금송은 당시 일본 내에서도 지배계층들이 가장 선호하던 관재였기 때문에 당시 왜의 조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백제는 긴밀한 외교관계를 바탕으로 금송과 같은 고품질의 목재를 왜로부터 들여올 수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명 : 무령왕 금제 뒤꽂이(武寧王 金製釵)
종별 : 국보 159호
지정일 : 1974-07-09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규모 : 길이 18.4㎝, 상단 폭 6.8㎝,三叉形 길이 8.5㎝
조성시기 : 백제시대(6세기 전반)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무령왕릉 나무널(목관) 안 왕의 머리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는 18.4㎝, 상단의 폭은 6.8㎝이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개의 꼬챙이쪽은 긴 꼬리처럼 되어 전체 모습이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날개쪽 좌우에는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찍었고, 그 아래는 서로 대칭으로 덩굴무늬를 빈틈없이 메꿔 놓았다. 새의 머리와 날개 부분의 테두리는 끌 끝으로 찍은 작은 점들이 열지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문양은 모두 뒤에서 두들겨 솟아 나오게 한 타출법(打出法)을 사용하였고 ,세부 표현에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끝이 3개로 갈라진 점으로 보아 의례 때 쓰인 머리 장식품으로 보인다
문화재명 :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武寧王陵 銅鏡一括)
종별 : 국보 161
지정일 : 1974-07-09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규모 : 神獸鏡 지름 17.8㎝, 宜子孫獸帶鏡지름 23.2cm
조성시기 : 백제시대(6세기 전반)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 의자손수대경, 수대경 3점이다.
청동신수경은 방격규구문경이라는 중국 후한의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거울 내부에는 반나체 인물상과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한나라의 거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의자손수대경은 중국 한대의 수대경을 본떠 만든 복제품이다.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있고, 안에는 크고 작은 원과 7개의 돌기가 솟아있다. 내부 주위의 테두리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선명하지 못하여 알아볼 수 없다.
수대경 역시 한나라 때 동물 문양을 새겨 넣은 수대경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 거울에 비해 선이 굵고 무늬가 정교하지 못하다.
국립공주박물관 1층에 마련된 무령왕릉실에 전시되고 있는 무령왕릉의 출토유물은 가히 세기의 대발견이라 할 만큼 역사, 고고학, 미술사, 문화재적 가치가 지대한 것으로 백제사가 안고 있었던 의문점을 푸는 열쇠가 된다. 출토유물 중 지석의 내용과 삼국사기의 내용이 일치하여 삼국사기의 신빙성을 한층 높이는 등, 백제 역사 전반과 64년간 백제 웅진도읍기를 밝히는 타임캡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 더불어 충남지역에서 발견되고 출토된 유적과 유물들은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충남고대문화실에 전시되고대왕국 백제의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있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개의 꼬챙이쪽은 긴 꼬리처럼 되어 전체 모습이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날개쪽 좌우에는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찍었고, 그 아래는 서로 대칭으로 덩굴무늬를 빈틈없이 메꿔 놓았다. 새의 머리와 날개 부분의 테두리는 끌 끝으로 찍은 작은 점들이 열지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문양은 모두 뒤에서 두들겨 솟아 나오게 한 타출법(打出法)을 사용하였고 ,세부 표현에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끝이 3개로 갈라진 점으로 보아 의례 때 쓰인 머리 장식품으로 보인다
청동신수경은 방격규구문경이라는 중국 후한의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거울 내부에는 반나체 인물상과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한나라의 거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의자손수대경은 중국 한대의 수대경을 본떠 만든 복제품이다.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있고, 안에는 크고 작은 원과 7개의 돌기가 솟아있다. 내부 주위의 테두리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선명하지 못하여 알아볼 수 없다.
수대경 역시 한나라 때 동물 문양을 새겨 넣은 수대경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 거울에 비해 선이 굵고 무늬가 정교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