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릉은 신라 제 38대 원성왕(785~798)의 능으로, 왕릉이 조성되기 이전에 연못이 있어 유해를 수면상에 걸어 안장하였을 것이라는 속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걸어놓은 능’이라는 뜻이다.
왕릉 앞 석상들 가운데, 마주보고 있는 무인상 한 쌍이 이국적인 외모로 깊은 눈, 넓은 코, 숱이 많은 수염 등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당시 신라를 떠올리면, 무인석의 모델이 무역을 위해 신라에 왔다가 눌러 살게 된 서역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옆에 서 있는 문인상은 당시 세계를 주름잡는 당당한 신라인의 모습을 , 무덤 앞에 사자상 두 쌍은 몸이 정면을 보고 있지만, 고개를 돌려 시선이 각각 동서남북을 향해, 왕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본분에 충실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라인의 치밀하면서도 여유 있는 해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봉분 주변에는 십이지상을 새긴 둘레돌을 둘렀고, 주위에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울타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