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59248]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번지
전화 : (061) 432-0837
▲ <백련사>
白蓮寺 정토왕생을 위한 염불수행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된 신행결사(新行結社).
중국 동진(東晉) 때의 고승 혜원(慧遠)이 동림사(東林寺)에서 염불왕생을 결사하고 백련사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에 보(寶)를 통하여 정토왕생과 관음신앙 등을 실천하는 각종 결사가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 백련사에서 이러한 운동이 행해졌는데, 중국의 백련사가 《법화경》을 중시한 반면 이곳에서는 《열반경》을 중시하였다.
창건은 대웅보전에 있는 중수기 현판에 의하면 통일신라 시대생왕(文聖王,재위 839~856) 때 무염(無染,801~888)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절은 그 뒤 고려시대인 1211년(회종7)에 원묘국사(圖妙國師) 요세(了世)에 의해 중창되면서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요세는 이보다 앞서 월출산 약사난야(藥師蘭若)에 거주했는데, 이 지방의 독실한 불교 신자인 최표(崔應) · 최홍(崔弘) 형제와 이인천(李仁鬪) 등의 요청으로 만덕산에 옮겨와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 · 지담(之灌) · 법안(法安) 등으로 하여금 건물 80여 칸을 짓게 하고 1216년(고종3)에 낙성법회를 열었다.
그 뒤 요세 스님은 1221년에 남원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청으로 관내에 제2의 백련사를 설치하고 몇 년을 그 곳에서 머무르다가 1223년 최표의 간청으로 다시 백련사에 돌아와 도량을 크게 넓히고 법석을 마련했다. 요세의 입적 이후 절은 천인 ·원환 · 천책 등으로 이어지면서 법맥을 이어나갔다.
고려 말조선 초에 이르러서 절은 왜구의 노략질로 폐사가 되다시피 했다. 조선 초기에 들어와서는 1407년(태종7) 12월의 나라에서 실시한 2차 사찰정리기에 조계종 자복사(資福寺) 24개 사찰 중에 소속되고 있어, 비록 고려 말에 왜구의 침략으로 사찰이 많이 훼손되기는 하였으나 그 명맥은 계속 유지해 갔다. 절은 그 뒤 1426년(세종8)에 천태종 승려 행호(行秊) 스님이 크게 중창하였다. 천태종의 영수이며 도대선사(都大禪師)의 칭호를 갖고 있던 행호 스님은 임금의 장수와 국가의 복락을 비는 서원(誓願)을 하면서 제자 신담(信繼)등으로 하여금 여러 단월에게 시주를 권유하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효녕대군(孝寧大君)에게 편지를 보내 대공덕주가 되어 줄 것을 청했고, 효녕대군은 기쁜 미음으로 시주하고 힘을 더해 주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들었는데, 특히 조수(曺隨)와 강습(姜濕)이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 중창 불사는 1430년에 시작하여 1436년에 준공되었는데, 이로써 불전과 승료가 옛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효녕대군은 왕위를 세종 임금에게 양보하고 사찰을 유람할 때 백련사에 8년 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맡 54두 2승락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그 뒤 1621년(광해군13)~1627년(인조5) 사이에 취여삼우(醉如三愚) 스님이 법회를 열며 옛날 모습을 되찾았다.
취여는 청허 휴정의 제자인 소요 태능(適遙太能)의 제자로서 백련사의 맹주가 된 것이다. 조선 후기에도 만덕사는 몇 차례 중수되었다 1650년(효종1)~1659년(효종10) 사이에는 현오(玄悟) 스님이 서원(西院)의 건물을 중수하였다.
또한 이 무렵에 절의 란기(適寄) 스님이 본사치 사적이 오래되어 없어져 버릴 것을 염려하여 조종저(趙宗著)에게 글을 청해 <백련사사적비>를 1681년(숙종7)에 세웠다. 1760년(영조 36) 2월에는 큰불이 일어나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절의 여러 스님이 중건을 서원하고는 각자 분담해서 시주를 모아 이듬해 4월8일 불사를 시작, 1762년 4월 13일 대법당의 중건을 마무리했다. 이 같은 사실은 대웅보전에 걸려 있는 중수기 현판을 통해 알 수 있다.
대웅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 136호) Main Buddha Hall
1760년 큰 불이 일어나 대웅보전이 소실되자 월인당 총신 스님은 왈찰(曰刹), 지정(智正), 혜철(惠哲), 태화(太和), 신증(愼證), 규연(圭演), 찰연(察演), 윤철(閏哲), 연징(蓮澄), 붕관(鵬寬) 스님 등과 함께 대웅보전 중건을 서원하고 시주를 모아 이듬해 4월 8일 불사를 시작해서 1762년 4월 13일 대웅보전을 완성합니다.
새로운 법당에 모셔진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은 1710년 목조로 조성된 부처님으로 얼굴에 드러난 온화한 미소는 당시 불상을 조각했던 조선사람들의 순박하고 지극한 마음을 시대를 넘어 느길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옛 선조들의 아름다운 신앙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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