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
종 목 원주시 향토유적 제2009-1호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402-3
충렬사는 1291년(고려 충렬왕 17년)의 합단적 침입과 1592년(조선 선조 25년) 왜적 침략에 맞서 국권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1290년 원나라 반적 합단적[카단]이 고려의 동북변방을 침입한 이후 1291년 철령을 넘어 교주도로 난입하여 양근[양평]을 점령하고 원주에 이르러 치악산 영원산성을 공격하자, 원주별초에 소속되어 있던 향공진사 원충갑은 결사대 중산, 방호별감 복규, 흥원창판관 조신, 별장 강백송, 원주 관리 원현·원종수, 유생 안수정 등 다수의 원주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들을 물리쳤다. 이로부터 합답적은 예봉이 꺾여 여러 고을에서도 굳게 방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원충갑 등의 공로로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동안 면제되었다.
일본국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으로 촉발된 임진왜란은 유사 이래 최대의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 적장 모리길성이 이끄는 왜적이 영동지방을 짓밟고 남한강 상류를 따라 평창·영월·주천·신림을 거쳐 원주로 침입하자, 원주목사 김제갑은 병사와 고을 백성들을 모아 영원산성에서 결전을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영원산성은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김제갑 원주목사는 항복할 것을 강요하는 왜적에게 굴복하지 않다가 끝내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작은아들 김시백 또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비보를 들은 부인 전주이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때는 1592년(조선 선조 25년) 8월 25일이었다. 김제갑 목사와 아들 그리고 부인은 충성과 효도와 정렬로써 순절하여 충 · 효 · 열의 표상이 되었다.
이에 앞서 강원도조방장 원호는 1592년 5월 여주 신륵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패주하는 적을 구미포에서 섬멸하여 서울로 향하던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전공을 세웠고, 이러한 승첩으로 경기·강원양도조방장 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592년 8월 왜적에 의해 철원·평강·김화 등이 유린당하자, 병사를 이끌고 김화에 이르러 분전하였으나 왜적의 형세를 당할 수 없어 왜적에게 굴복되기 전에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1669년(조선 현종 10년) 원주 하동리에 14칸으로 건립된 충렬사는 원주 유생들이 상소하여 1670년(조선 현종 11년) 윤 2월 7일 ‘충렬사’로 사액되었고, 응양상호군 충숙공 원충갑 · 원주목사 문숙공 김제갑 · 여주목사 충장공 원호 등 3위를 배향하였다.
1871년(조선 고종 8년)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려 없어진 이후 복원되지 못하다가 원주원씨 운곡대종회에서 건립부지를 희사하고 강원도와 원주시가 공동으로 2009년 준공하여 매년 원주시민의 정성을 모아 제향하고 있다. 한편 충렬사와 관련된 유물로 1670년 당시의 사액현판은 1871년 충렬사가 없어지면서 충북 괴산 김제갑 원주목사의 불천지위 사당에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가 2009년 5월 7일 충렬사 복원건립 준공에 맞춰 원주시에 기증하였다.
아쉽게도 오늘 방문한 충렬사는 문이 닫아져 있어 겉에서만 돌아보아야 했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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